어릴 때부터 우리 집 식탁 위에는 늘 친숙한 한 그릇이 있었다. 바로 ‘달걀 비빔밥’.
누구나 한 번쯤은 먹어봤을 단출하고 소박한 음식이지만, 우리 집만의 특별한 방식이 있었다.
보통은 달걀 비빔밥에 간장을 한두 방울 톡 떨어뜨려 비벼 먹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 집은 달랐다.
간장이 아닌 고추장을 넣는 게 당연했다.
매콤하면서도 짭짤한 고추장의 풍미가 달걀의 고소함과 어우러져, 그 맛은 단순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부랴부랴 일어나 식탁에 앉으면,
어느새 달걀후라이 세 개가 노릇하게 구워져 있었다.
엄마는 늘 ‘하나로는 부족할까 봐’라며 넉넉하게 세 개를 부쳐주셨다.
흰자는 가장자리가 바삭하게 익고, 노른자는 살짝 흐르는 ‘반숙 스타일’.
그걸 하얀 밥 위에 척척 얹어주시고, 마지막으로 큼지막한 숟가락으로 고추장을 쭉 짜주셨다.
그 모습은 어린 내게 세상에서 가장 든든하고 포근한 광경이었다.
비비는 순간도 참 행복했다.
뜨거운 밥과 고소한 달걀, 매콤한 고추장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퍼지는 그 향기.
숟가락을 힘껏 눌러 비비다 보면, 노른자가 터져 밥알 하나하나를 노랗게 감싸준다.
그리고 고추장의 진한 붉은 빛이 밥과 어우러지며 식욕을 자극한다.
첫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으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밥알 사이사이로 퍼지는 고소함과 매콤함이 절묘하게 섞인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달걀의 부드러움, 고추장의 자극적인 매콤함, 밥의 따뜻한 포근함.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 어린 마음에도 "아, 이게 진짜 행복이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가끔은 엄마가 참기름을 한두 방울 더 떨어뜨려 주시기도 했다.
그러면 풍미가 한층 깊어져,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나서야 겨우 젓가락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특별한 반찬도, 거창한 재료도 필요 없었다.
고추장 하나, 달걀후라이 세 개, 그리고 따끈한 밥.
그걸로 충분했다.
지금도 가끔 집에서 달걀 비빔밥을 해 먹는다.
성인이 되고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귀찮아서 대충 먹을 때도 많지만,
마음이 허하거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질 때면 꼭 고추장을 꺼내어 달걀 세 개를 굽는다.
바삭한 흰자와 흐르는 노른자, 그리고 고추장을 듬뿍 얹어 비벼 먹으면,
그때 그 시절, 엄마의 따뜻한 손길과 아침 햇살이 느껴지는 듯한 포근함이 마음까지 감싼다.
요즘은 간장버전 달걀비빔밥이 대세라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고추장 버전이 진리다.
가끔 친구들이 "고추장을 넣으면 너무 맵지 않냐"고 묻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익숙해진 맛은 오히려 더 위로가 된다.
특히나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집에 돌아온 날,
조용한 부엌에서 달걀을 굽고 고추장을 짜 비비는 그 순간,
세상의 복잡함이 사라지고, 단순한 행복 하나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