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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를 보고 알게 된 섬, 소록도의 슬픈 이야기

동유세상 2025. 4. 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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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이 고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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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고흥 근처에 ‘소록도’라는 섬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어렴풋이, 그곳에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아픔과 눈물, 억울함까지는 알지 못했다.

어제 우연히 TV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꼬꼬무)’를 보며 처음으로 소록도의 진짜 이야기를 접했다.

마음이 먹먹하고,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소록도는 원래 사슴처럼 생긴 조그만 섬이라고 해서 ‘소록도(小鹿島)’라 불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이름 뒤에는 너무도 오랫동안 감춰진 슬픔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일본은 이곳에 국립 한센병 치료소를 세운다. 겉으로는 치료소였지만, 실상은 격리수용소이자 인권의 사각지대였다.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강제로 가족과 생이별을 당하고, 이름조차 버린 채 그곳에 끌려갔다.

그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강제노역은 물론이고, 여성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강제 불임 시술, 심지어 실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라를 잃고, 병으로 고통받는 것도 모자라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 빼앗겼던 것이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그런 비극이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일본이 떠난 후에도 소록도는 여전히 철문 안의 섬이었고, 외부와 단절된 채 고통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는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야 했고, 누군가는 ‘낙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꼬꼬무를 통해 소개된 생존자들의 증언은 참혹했다.

그분들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끝없는 슬픔과 억울함, 그리고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지금도 소록도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는 많이 고령이 되었고, 대부분이 외부의 시선과 단절된 채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그분들의 삶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소록도 대교가 개통되면서 섬은 육지와 연결되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마음의 다리’는 아직도 놓이지 않은 듯하다. 우리가 그분들의 이야기를 외면하고 잊는다면, 그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된 고통과 희생은 또다시 사라질지 모른다.

 

방송을 보며 나 스스로도 반성하게 되었다.

너무 오랫동안 편견 속에 살아온 건 아닐까.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외면해온 건 아닐까.

소록도는 단지 아픈 역사 속의 섬이 아니라, 지금도 삶이 이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공간이다.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꼬꼬무처럼 잊혀져 가는 역사를 다시 꺼내고, 대중에게 알리는 프로그램 덕분에, 이제라도 그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기억하고, 전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

소록도의 이야기는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이웃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역사이다.

진실은 때로 불편하고 아프지만, 외면하는 순간 다시 반복된다. 그러니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알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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