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이 오는 나이, 글씨가 선명하지 않다
며칠 전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를 읽으면서 순간 멈칫했다.
분명히 아는 단어고, 문장도 이상한 건 아닌데 어쩐지 또렷하게 읽히지 않는다.
화면을 좀 더 멀리 떨어뜨려보기도 하고, 다시 가까이 당겨보기도 했지만 선명하게 들어오지 않는 글씨. 아, 이게 바로 노안이라는 건가 싶었다.
예전엔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어르신들의 휴대폰을 보며 ‘글씨가 참 크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땐 그냥 어르신들은 눈이 안 좋아서 그렇게 쓰시는가보다, 내 일은 아니라고 느꼈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휴대폰의 글씨 크기를 키우는 버튼을 누르고 있다. 약간은 당황스럽고, 또 조금은 씁쓸하다.
눈이 침침하다는 걸 처음 느낀 건 책을 읽다가였다. 전에는 아무 문제 없이 몇 시간이고 책에 빠져들 수 있었는데, 요즘은 조금만 읽어도 눈이 피로하고, 초점이 잘 안 맞는다.
게다가 실내 조명이 조금만 어두워도 금세 눈이 뻑뻑해지고 두통까지 따라온다.
가까운 글씨는 안 보이고, 먼 곳을 보면 또 금세 피곤해진다.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핸드폰 밝기를 조절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리는 그런 소소한 행동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가끔은 내 모습이 너무 어른스러워 보여서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예전엔 부모님이 책을 팔 길이만큼 떨어뜨려서 보시던 모습을 ‘왜 저렇게 보시지?’ 했는데, 요즘은 내가 그러고 있다.
작은 약봉지 글씨, 식당에서 메뉴판의 가격, 엘리베이터 안내판의 문구까지도 가끔 흐릿하게 보여 한 번 더 눈을 찌푸려야 한다.
사실 ‘노안’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쩐지 나이 듦을 인정하는 느낌이라 쓰기도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생체 변화다.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글씨 크기를 키우는 일, 밝기를 조절하는 일, 필요한 경우 돋보기를 사용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 몸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스마트폰에도 ‘돋보기 모드’나 ‘큰 글씨 보기’ 기능이 잘 마련되어 있어 생각보다 훨씬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익숙해지니 오히려 눈이 편안해지고 메시지를 읽을 때의 스트레스도 줄었다.
작은 글씨를 억지로 읽으려 애쓰는 것보단 훨씬 낫다.
노안이 온다는 건 단순히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를 넘어, 더 이상 예전의 방식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의 변화에 귀 기울이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지금 내 휴대폰 글씨는 예전보다 두 단계나 커졌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지금은 이게 나에게 맞는 크기다. 이 변화가 삶을 더 불편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를 돌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나이듦이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점점 더 깨닫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