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세상이 내 앞에 활짝 열릴 줄 알았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유, 차 키만 잡으면 떠날 수 있다는 기대감. 하지만 막상 운전대를 잡고 도로에 나서보니, 그 자유에는 무게가 있었다.
피로라는 이름의 무게. 그리고 그 피로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 가족의 존재.
처음에는 단순히 "운전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대중교통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무거운 짐도 손쉽게 나를 수 있고, 비 오는 날에도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운전은 '삶의 질' 그 자체로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초보 운전자가 되어보니, 시내도로 하나하나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신호 대기 중에도 주변 차량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하고, 차선 변경은 마치 시험을 보는 듯한 긴장감을 안겨줬다.
몇 시간 운전하고 나면 머리는 멍하고, 어깨는 뭉치고, 밤이 되면 깊은 피로가 몰려왔다.
'운전이 이렇게 체력 소모가 심한 일이었나' 싶었다.
그 속에서 문득 떠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특히, 평소 나를 데리고 다니느라 수고한 동생. 장롱면허일 때는 '오빠, 어디 좀 데려다줄래?'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곤 했는데, 내가 직접 운전해보니 그 부탁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지, 얼마나 피곤했을지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였다.
그리고 생각났다.
언젠가 엄마를 태우고 전국 일주를 해보고 싶다는 내 꿈. 돌아가신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내가 직접 운전해 드리며 드라이브를 함께했을 텐데. 운전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연결이란 걸 점점 깨닫고 있다.
요즘은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한다.
‘오늘도 피곤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다는 뿌듯함.’ 그리고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운전할 수 있다는 감사함.’
운전을 배우면서 나는 단지 길을 익히는 게 아니라, 내 삶의 풍경도 새롭게 보고 있다.
도로 위에서 만나는 자유, 그 자유 뒤에 숨은 피로, 그리고 그 피로를 감싸주는 가족의 존재. 이 모든 게 나를 조금씩 성장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