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KTX 시대, 사라진 기차 여행의 ‘사람 냄새’
기차 안 대화는 금물? 열차 내 소음 민원 급증 배경
예전에는 기차를 이용하는 시간이 조금 많았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기차역과 조금 멀리 이사를 가면서 기차 이용이 줄었습니다.
오랜만에 기차를 탔는데 안내방송이 계속 귓가에 맴돕니다.
한때 기차 여행은 사람들의 삶 속에 로망이자 낭만이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들판과 바다, 지루함을 달래던 도시락, 맞은편 승객과의 소소한 대화…
그 모든 것이 ‘기차 여행의 사람 냄새’로 기억된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KTX라는 빠르고 효율적인 열차에 익숙해졌고, 그 속에서 나누는 대화조차 민원이 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최근 KTX에서는 “객실 내 대화는 자제해달라”는 안내 방송이 자주 들려온다.
조용한 칸이 아닌 일반석에서도 이러한 방송이 흘러나오는 걸 보면, 실제로 열차 내 ‘소음 민원’이 급증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자연스럽게 나누던 가족 간의 이야기나 친구와의 웃음소리도 이제는 누군가에겐 ‘불편한 소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배경에는 변화된 승객들의 여행 방식이 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조용히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늘면서, 공공장소에서의 ‘개인 공간’이 더욱 존중받고 있다.
특히 장거리 이동 중 업무를 보는 직장인이나 공부하는 수험생들에게는 열차 안이 중요한 집중 공간이 되었다.
그만큼 작은 소음도 예민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조용한 KTX’라는 말이 상징하듯, 빠른 속도와 효율성은 얻었지만, 그 속에 깃들어 있던 인간미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낯선 사람과 창밖 풍경을 보며 나누던 짧은 대화 속에서 여행의 추억이 쌓였고, 그것이 기차 여행의 묘미였다.
지금은 마치 도서관처럼 조용해야만 하는 분위기 속에서, 정작 ‘여행의 감성’은 사라진 듯하다.
물론 모두가 편안한 환경에서 이동할 수 있도록 조용함을 지키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 간의 따뜻한 교감, 배려 있는 대화가 완전히 사라져서는 안 되지 않을까. 적절한 소통과 예의 있는 태도는 조용함과 공존할 수 있다.
기차 여행이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은 연결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언젠가 다시, 빠르면서도 따뜻한 기차 여행이 가능해질 날이 올까. 고요함 속에서도 미소 짓는 사람 냄새 나는 기차 풍경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